만병통치, 산화질소(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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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 산화질소(NO)
  • 조성호 기자
  • 승인 2019.02.0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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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전달물질로서 산화질소(NO)의 역할

만병통치, 산화질소(NO)

이종호박사(한국과학저술인협회회장)

이기사는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발기부전을 치유한다는 비아그라가 시판되자 미국의 <비지니스 워크>지는 곧바로 삶을 바꾸는 ‘생활의약의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했다. 전에는 약의 영역이 아니었던 생활의 곳곳에 약이 침투해 인간의 행복이 약으로 지배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탈모방지제, 기억력증강제, 노화방지제, 비만제거제, 콜레스테롤감소제, 주름살제거제, 혈색강화제 등 질병을 위해 꼭 필요한 약이 아니면서도 먹으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발기부전치료제로 개발된 비아그라는 우리의 생활과 가치를 바꾸어가는 생활의약의 선두주자로 그 파급효과가 어느 것보다 크다. 그런데 이 비아그라의 원리가 199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미국 뉴욕주립대 건강과학센터의 로버트 퍼치고트(Robert F. Furchgott) 박사, UCLA 의대의 루이스 이그나로(Louis Ignarro) 교수, 그리고 텍사스 의대의 페리드 뮤라드(Ferid Murad) 교수다. 그들의 수상 업적은 「신경전달물질로서 산화질소(NO)의 역할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연구한 물질은 자동차 배기가스에 섞여 나와 지구온실화의 주범으로 작용하는 산화질소이다. 그런데 산화질소가 인체에서는 오히려 심장혈관 체계에서 신호전달물질로 작용하는 효자 노릇을 한다는 점을 밝힌 것이 수상 이유이다.

<적용처가 바뀐 비아그라>

산화질소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발기 부전 치료제로 알려진 비아그라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발기부전 치료제는 비아그라만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잘 알려진 ‘비아그라’를 기본으로 설명하는데 비아그라는 산화질소가 성기의 혈관을 확장시켜 발기가 이뤄진다는 원리에 근거해 만들어진 약이다.

의학용어로 발기부전 혹은 성교불능은 원시시대부터 남성들을 고민스럽게 만들어 온 문제이다. 남성의 성교 능력은 발기가 충분히 되는가에 따라 다른데 발기에 관한 역학이 의학적으로 매우 복잡해서 사람들에 따라 쉽게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발기는 다양한 관능적 영향, 특히 접촉 자극에 의해 음경의 끝부분에서 일어난다. 이때 일어나는 신경흥분이 척수의 발기중추에 영향을 주면 음경의 해면체로 강한 동맥혈류가 흐르게 된다. 이렇게 해서 해면체가 팽창되고 이를 통해 결합조직의 외피가 팽팽하게 당겨져 음경이 경직되고 동시에 혈액을 흘려보내야 할 정맥은 좁아진다. 그래서 혈액의 흐름이 지체되고 발기는 점점 강해져 오래 지속된다. 절정기에서 사정이 끝나면 혈액이 다시 해면체에서 흘러나와 발기가 풀리게 된다.

문제는 발기가 여러 가지 심리적ㆍ물리적 요소에 의해 방해받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대부터 남성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바로 발기가 지속되는 것인데 이런 용도가 바로 정력을 높여주는 정력제이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동물의 조직과 장기로 정력제가 만들어졌는데 잘 알려진 예가 코뿔소의 뿔을 갈아 만든 가루이다. 이 약에 대한 수요는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어 코뿔소를 거의 멸종의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인의 극성은 세계적이다. 건강에 좋고 정력에 좋다하면 세계의 어느 곳이든 단체로 몰려드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인들을 특정 장소에 파견하면 사슴, 원숭이, 곰 등을 멸종시킬 수 있다는 것도 그래서 나왔다. 여하튼 산화질소의 주요 역할은 한마디로 몸 곳곳에서 혈압이 높아지는 것을 막는 일이다. 혈관은 혈관 내벽을 구성하는 한 층의 내피세포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층의 평활근세포로 구성돼 있다. 혈압은 평활근세포가 수축하고 이완하는 정도에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학자들은 과거부터 산화질소가 상피세포에서 만들어진다고 추측했다. 그런데 상피세포에서 나오는 산화질소는 상피유래방출인자와 생물학적 활성, 안정성, 억제제와 강화제에 대한 감수성에서 서로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영국 런던대 울프슨생의학연구소 소장인 살바도르 몬카다 박사가 산화질소가 생체신호전달물질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웰컴연구소에서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액응고를 억제하는 물질인 스로스타사이클린을 개발해 고혈압 치료제로 출시한 고혈압 치료제 전문가이다. 그런데 1985년, 추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미국 뉴욕주립대 로버트 퍼치코트 교수가 그의 연구소를 방문했다. 퍼치코트 박사는 자신이 직접 명명한 ‘상피유래방출인자(EDRF)’가 혈관의 상피세포에서 분비돼 주변 근육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결과 혈관이 확장돼 혈압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EDRF의 실체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는데 몬카다 박사가 그 의문점을 자신이 규명하겠다며 곧바로 EDRF의 실체를 밝히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의 연구 결과는 놀라워 곧바로 실험에 들어가 EDRF가 산화질소임을 확인했다.

상피세포에 있는 필수아미노산(L-아르기닌)에 산화질소 합성효소가 작용하면 산화질소가 형성된다. 산화질소는 인접한 평활근세포로 들어가 평활근세포를 이완시키는 물질(c-GMP)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혈관은 확장된다.

산화질소의 또 다른 역할은 혈소판이 응집되는 과정을 억제하는 일이다. 혈소판이 응집돼 혈관에 쌓이면 혈액의 흐름이 막혀버린다. 따라서 산화질소가 잘 생성되지 않으면 동맥경화나 고혈압과 같은 혈관계 질환이 발생하며, 심하면 신경계 장애마저 일으킬 수 있다. 만일 음경에서 산화질소 생성에 장애가 생기면 혈관 확장이 잘 안 돼 발기부전(임포텐스)이 초래될 수 있다. 비아그라는 c-GMP가 다른 효소에 의해 깨져 없어지는 일을 막음으로써 음경의 혈관을 확장시키는 약제다. 물론 산화질소가 항상 인체에 이로운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세균의 침입으로 산화질소가 다량 만들어지면 혈관확장에 의해 혈압이 떨어져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는 산화질소 생성 억제제를 투여해 혈압을 올린다. 산화질소의 부작용은 방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하튼 몬카다 박사의 연구는 학자들을 놀라게 했는데 산화질소처럼 독성이 강한 기체가 생명체에서 신호전달물질로 쓰인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질소원자 하나와 산소원자 하나가 결합된 산화질소는 불안정한 라디칼로 산성비나 호흡기질환의 원인이 되는 물질이다. 산화질소가 EDRF와 비슷한 작용을 한다는 정황 증거가 여러 차례 포착됐음에도 과학자들이 좀처럼 ‘EDRF=NO’라는 가설을 떠올리지 못한 이유다. 더욱이 EDRF는 생성된 지 수초 만에 사라질 정도로 불안정했기 때문에 실체를 밝히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점이 오히려 EDRF가 산화질소임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로 제시되었다. 불안정한 라디칼인 산화질소는 좀 더 안정한 물질인 아질산염(NO-2)이나 질산염(NO-3)으로 쉽게 바뀌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자동차업계에서 쓰는 화학발광 측정 장치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화학발광이란 분자가 화학반응을 할 때 빛을 내는 현상이다. 몬카다 박사는 상피세포가 아미노산의 하나인 아르기닌이 분해되면서 산화질소가 만든다는 것을 밝혔다. 1991년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솔로몬 스나이더 교수는 산화질소합성효소(NOS)의 실체를 밝혀냈고 이 효소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도 알아냈다.

그의 연구는 인체에 큰 영향을 주논 소재를 주제로 했으므로 1990년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인용된 과학자에 올랐고 1998년 4월, 12살 연하인 벨기에의 마리-에스메랄다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또 다시 주목받았다. 중미인 살바도르 출신의 과학자가 유럽 왕족과 결혼한다는 건 당대에 가장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EDRF의 실체가 산화질소임이 밝혀진 이후 산화질소의 생체 내 역할에 대한 연구가 쏟아졌다. 근육이완을 통한 혈관확장에 관여할 뿐 아니라 뉴런의 신호전달에도 개입하고 면역계의 대식세포가 산화질소를 고농도로 내보내 침입한 병균을 무찌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 뒤 혈관의 상피세포에서 만들어진 산화질소가 근육의 이완을 유발하는 과정도 상세하게 밝혀졌다. 산화질소는 근육세포 안에서 구아노신삼인산(GTP)을 고리형구아노신일인산(cGMP)으로 바꾸는 효소를 활성화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이클릭구아노신모노인산(cGMP)는 단백질인산화효소(PKG)를 활성화하고 그 결과 여러 단백질이 인산화되면서 근육이완이 일어난다. 그런데 cGMP는 필요에 따라 세포내에서 순식간에 만들어지고 역할이 끝나면 역시 바로 분해돼 발기가 풀린다. cGMP를 분해하는 역할은 포스포디에스테레이즈 5(Phosphodiesterase 5, PDE5)라는 효소가 맡는다. 만일 cGMP가 만들어지는 양이 적으면 신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동맥이 이완하지 않고 따라서 발기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PDE5의 작동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면 신호를 전달한 만큼 cGMP 농도가 높아질 수 있어 발기가 가능해지는데 바로 비아그라가 하는 역할이다.

효소는 촉매활성이 있는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보통 수백 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덩치가 큰 분자지만 실제 촉매작용은 이 중 아주 일부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이 부분을 활성부위라고 한다. 효소는 이 활성부위에 꼭 들어맞는 물질, 즉 기질에 대해서만 촉매반응을 일으킨다. 효소가 자물쇠라면 기질은 열쇠인 셈이다. PDE5의 기질인 cGMP가 효소의 활성부위에 자리를 잡으면 물분자 하나가 다가와 반응이 시작된다. 즉 물분자가 cGMP의 인(P) 원자와 결합하면서 cGMP의 고리가 끊기며 구아노신모노인산(GMP)으로 바뀐다. 이렇게 만들어진 GMP가 효소를 떠나면 새로운 cGMP가 활성부위에 다가와 같은 촉매 반응이 계속된다.

비아그라의 구조는 cGMP의 구조와 서로 유사하다. 이 때문에 비아그라가 PDE5에 달라붙을 수 있는 것이다. PDE5에 비아그라가 붙어있는 한 cGMP는 분해될 우려없이 안심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cGMP나 비아그라가 실제 어떤 형태로 PDE5와 결합하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이정규 박사는 X선 결정법으로 cGMP가 결합된 PDE5와 비아그라가 붙어있는 PDE5의 3차원 구조를, 효소를 구성하고 있는 수천 개의 원자 하나하나의 위치까지 모두 밝혀냈다. 또 비아그라에 이어 출시된 발기부전 치료제인 레비트라(Levitra)와 시알리스(Cialis)에 대해서도 효소와 결합된 구조를 규명했다.

구조를 분석해본 결과 예상대로 약물들은 cGMP가 결합하는 효소의 부위, 즉 활성부위와 동일한 부위에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활성부위는 효소가 직접 촉매작용을 하는 부분이다. 비아그라의 경우를 보면 cGMP와 구조가 비슷한 부분이 효소의 활성부위에서 cGMP의 해당 부분과 정확히 겹치는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약물이 발기부전 치료제처럼 효소의 활성부위에 작용해 촉매활성을 변화시킴으로써 약효를 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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