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역사유적지구(35)...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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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사유적지구(35)...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
  • 조성호 기자
  • 승인 2019.08.2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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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I : 에밀레종)

경주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마무리는 경주 시내에 있는 경주국립박물관 방문이다.

경주국립박물관의 시원은 여타 박물관과는 매우 다르다. 경주가 신라 천년의 고도였던 까닭에 문화재 보호에 일찍 눈을 뜬 경주지역 유지들이 1910신라회를 만들었고 이 모임은 1913고적보존회로 발전하여 1915년 경주 객사에 진열관을 만들었다. 이것이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신이다. 이후 소장품들이 점점 증가했는데 해방 뒤 서울의 총독부박물관이 국립박물관으로 개관하자 국립박물관 경주 분관이 되었고 1975년 현재의 자리에 이전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답사하면서 경주국립박물관을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에밀레 종, 황금보검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적 유물이 보관되어 있음에도 이들은 세계유산에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있기 때문에 지정되지 못한 것으로 신라의 향기와 또 다른 진수를 맛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곳으로 꼭 봐야 할 것이 산재해 있다.

 

세계 최고 천상의 소리

국립경주박물관을 들어가면 정면으로 에밀레종이 보인다. 날렵한 모습의 전각 속에 있으며 녹음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밀레종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마치 산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방문객들이 있어 그런 정취를 만끽하지는 못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종을 만들어 여러 가지 사용했다.

사람들을 불러 모을 때 시간을 알릴 때 긴급 사건에 대한 경고 종교의식 음악

위와 같이 여러 가지 용도로 종을 사용했지만 그중 가장 많이 사용된 곳은 불교의 사찰에서 사용하는 범종이다. 한국에 불교가 들어오면서부터 사찰에서 예불에 사용되는 의기로 법고, 운판, 목어와 더불어 종을 사물(四物)의 하나로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사용하는 종을 범종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의 심금을 울려주는 종이 바로 에밀레종이다.

신라 혜공왕은 봉덕사의 신종 주조를 위해 스님들로 하여금 온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재물을 거둬들이게 하였다. 불심에 가득 차 있는 백성들은 나라에서 큰 종을 만든다는 말에 자기의 힘이 닿는대로 재물을 바쳤다. 그리나 종이 완성되었지만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모두들 종이 울리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던 중 불심이 돈독한 어느 가난한 여자가 자신의 어린 딸을 시주했고 이 어린아이를 쇳물이 함께 녹여 다시 만들자 이번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다. 종은 넓은 경주 땅은 물론이고 온 나라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종소리는 마치 어린 딸이 어머니를 부르는 듯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하고 울었다. 에미 때문에, 에미 때문에라고 운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가엾은 어린이를 동정하였다. 이것이 봉덕사의 신종이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전설의 내용이다. 사실 종소리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웅장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고, 같은 소리라도 처량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어린아이가 종소리를 좋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쇳물과 함께 녹여졌다는 이야기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전설의 내용이 사실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기가 진짜로 희생됐다는 주장은 에밀레종 속에 인(, P)의 성분이 작게나마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사람의 뼈나 동물의 뼛속에 있는 인의 성분은 물질의 합성이나 합금을 만들 때 신기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도 우리나라의 무쇠와 청동불상에는 인이 소량 들어있으므로 에밀레종 속에서 인이 발견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불교가 매우 성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봉덕사의 신종에 포함된 인은 동물의 뼈라기보다는 인신공양(사람의 몸을 바치는 일)으로 사람의 뼈가 녹아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1970년대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에서 정밀 조사로 에밀레종의 성분을 측정했다. 한국에서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1970년대에 에밀레종을 복제하여 미국에 선물을 보냈는데 이들 작업을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수행했다(‘우정의 종으로 명명된 이 종은 현재 미국의 로스앤젤러스(LA) 항구에 있다). 이때 에밀레종에서 한 어린아이의 유체(시체)에 해당하는 인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한편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은 국립경주박물관의 의뢰로 19988, 에밀레종을 분석하였더니 뼈의 주성분인 인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하였다. 에밀레종 12군데서 샘플을 채취, 분석 시료 안에 1천만 분의 1% 이상 들어가 있는 성분은 모두 검출할 수 있는 극미량원소분석기로 분석한 결과 인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똑같은 에밀레종의 검사를 두고 시험 결과가 엇갈리지만 포항산업과학원에서도 자신들의 분석 때문에 전설이 무조건 근거가 없다는 얘기를 해서는 곤란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국립중앙과학관의 정동찬 실장은 사람의 비중이 구리보다 가벼우므로 전설처럼 어린아이를 넣었다면 위로 떠서 타기 때문에 쇠찌꺼기처럼 남게 된다. 만약에 에밀레종 제작 당시에 이것을 불순물로 생각하여 제거했다면 인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견해였다. 또한 1970년대와 1990년대에 시료 채취 부위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1990년대에는 우리 유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함부로 원본을 훼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포항산업과학원에서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종 내부의 돌출부에서만 채취했는데 이 경우 심도 있는 성분이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것은 에밀레종을 만드는 법으로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에밀레종을 만들 때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커다란 가마솥에 청동을 전부 녹인 다음 거푸집에 한꺼번에 붓는 것이 아니라 청동을 여러 곳에 나누어 조금씩 녹이면서 거푸집 안으로 흘려 넣는다. 이는 처음 과학기술연구원에서 분석을 위해 채취한 곳과 포항산업과학원에서 채취한 곳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하튼 에밀레종에 대한 전설은 인의 발견과 관계없이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을 계속 지니게 되지만 이와 같은 전설은 에밀레종을 만들 때 보다 좋은 종을 만들려는 신라인들의 정성이 깃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에밀레종의 명문(銘文)에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라 새겨져 있다. 몸체 높이는 2.91미터이고 종걸이의 높이는 0.65미터이며 전체 높이는 3.7미터이다. 바닥 면의 직경은 2.2미터이고 종신(鐘身)의 두께는 밑쪽이 21.5센티미터이며 위로 올라감에 따라 10센티미터 정도로 얇아지며 전체의 부피는 약 3세제곱미터 정도가 된다. 에밀레종은 그 동안 구리 12만 근으로 만들어졌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대략 20톤으로 무게를 추정해왔으나 1997년의 정밀측정에 의해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에밀레종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종으로 추정하는데 첫째는 1735년에 주조된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안에 있는 종으로 무게는 약 200톤에 달하며 둘째는 1420년에 주조된 북경 대종사에 있는 영락대종으로 무게는 46.5톤이다.

동양의 범종은 그 형식과 특징으로 보아 중국종, 한국종(주로 신라 및 고려 시대의 범종 형식) 및 일본종으로 구별한다. 중국의 종은 유리컵을 거꾸로 한 모양에 역U자형의 고리를 갖는 형태로 종의 하단부가 서양종처럼 나팔 모양으로 벌어진다. 또한 하단이 파행선을 이루는 형태로 되어 있고 표면에는 모양이 거의 없이 단순한 구획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종은 원통과 반구를 합쳐 놓은 듯한 일정한 형상에 역시 단순한 선의 조합이 표면에 조각되어 있다. 반면에 한국종은 몸체의 곡선미가 뛰어나며 조각과 문양이 아름답다.

종의 꼭대기에 있는 용뉴(龍鄙)의 용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종을 종각에 달기 위한 현가(縣架)용 시설물을 종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동양종의 종뉴는 서양종보다 화려한데 기원전 433년을 전후로 용 또는 새 모양의 형태가 등장한다. 범종은 주로 용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반적으로 중국종과 일본종은 쌍용두를 갖고 있지만 한국종은 유독 단용두를 갖는다. 물론 한국에서도 해인사의 동종처럼 쌍용두가 보이기도 한다.

어깨와 구연부에는 보상당초무늬가 장식된 문양대가 돌려졌고, 구연부의 끝부분이 모서리로 이루어졌는데 각 모서리마다 연꽃 한 송이씩을 배치하여 변화를 주었다. 어깨 밑에는 보상당초문양대가 장식된 유곽(乳廓)4곳에 배치되어 있고 그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乳頭)9개씩 조각되어 있다. 유곽 아래로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4구의 비천상과 연화 당좌(幢座) 2개를 교대로 배치했다. 비천상은 연화좌 위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두 손을 모아 향로를 받들고 공양을 드리고 있으며 그것을 휘감아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보상화무늬가 구름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종은 외관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범종이 갖지 못한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8세기의 한국 범종은 동아시아 어느 나라 종보다 훌륭한데 그것은 범종 재료의 배합비가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의 청동 제품은 구리, 주석, 납을 섞어 만들지만 용도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는데 한국의 청동에는 유난히 아연의 함량이 많다. 아연이 포함된 청동은 중국에서는 한()나라 이전에는 없고 송()나라 때 드물게 나타난다. 아연은 섭씨 900도에서 끓기 때문에 아연이 많이 들어 있는 청동을 합금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청동이 기술적으로 중국이나 일본보다 우수한 것은 자유자재로 우수한 합금을 만들 수 있었다는 뜻이다.

두 번째, 범종을 청동으로 만드는 데는 회전법과 납형법이 있는데 서울대학교의 남천우 교수에 의하면 한국의 범종은 최고급 기술인 납형법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회전법은 만형법(挽型法) 또는 총형법(總型法)이라고 부르며 간단히 말하면 밥솥과 같이 원형의 단면을 가지는 기물을 주조하는 방법이다. 주형의 내형과 외형은 각각 따로 만든다. 내형을 만들 때는 내형의 외면과 같은 단면 곡선을 가진 외판을 만들어서 그것을 회전시켜 가며 그 안쪽에 진흙을 쌓아 올려 만들고, 외형을 만들 때에는 외형의 내면과 같은 단면 곡선을 가진 내판을 만들어서 그것을 회전시켜 가며 진흙을 쌓아올려 외형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외형은 원형보다 크게 만들어야 하는데다가 무겁기 때문에 여러 단으로 나누어 쌓아 올릴 수 있게 만든다. 당연히 종에 주형선(鑄型線)이 생기게 된다. 또한 문양을 조각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것은 외형을 일단 완성한 다음에 그 외형에 또다시 조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납형법은 만들고자 하는 물체의 모양을 밀초로 미리 만들어 놓은 다음에 진흙을 발라 두텁게 씌워서 주형을 만든다. 그 후 밀초에 열을 가하여 모두 녹여 빼낸 다음 주형에 쇳물을 부어 종을 완성하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밀초로 종을 조각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종의 표면에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하고 정교한 문양을 표현하는데 적격이다. 물론 납형법이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종도 처음에는 회전형법이 사용되다가 납형법으로 이행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54년에 이미 49만 근의 황룡사종을 만들었으며 755년에는 30만 근의 약사여래동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불과 12만 근의 봉덕사종을 만드는데 많은 실패와 오랜 제조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황룡사의 종은 주형법으로 만들어졌지만 봉덕사 신종은 납형법으로 제조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료의 확보도 수월한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벌통 하나에서 1년에 생산되는 밀초의 양은 12리터밖에 되지 않는다. 봉덕사종의 부피를 약 3세제곱미터로 추정할 경우 이 정도의 밀초를 준비하려면 손실량을 감안할 때 적어도 4,0005,000개의 벌통이 있어야 한다. 당시의 여건으로 보아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는 밀초의 양이 아니라는 뜻이다.

불상이나 동종의 거푸집을 만들기 위한 밀랍의 원틀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점토에 만들려는 물체의 모양을 조각한 원형을 토대로 석고의 음형을 제작하고, 석고의 음형에서 다시 석고의 원형을 만들고, 또다시 석고의 원형으로 제라틴 음형을 만든 후 밀랍으로 원틀을 만든다. 합성밀랍을 구성하는 밀랍과 수나무 수지의 배합비율은 기후에 따라 다르다. 여름에는 형태가 변하지 않을 정도의 단단함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겨울에는 반대로 너무 단단하지 않아야 한다. 여름에는 대략 30퍼센트, 겨울에는 20퍼센트의 소나무 수지를 배합시켜서 합성밀랍을 만든다.

신라시대에 주조한 범종의 화학조성도 놀랍다. 모두 동 8085퍼센트, 주석 1215퍼센트 정도 함유된 주석청동이다. 에밀레종, 상원사종, 선림원종, 실상사종의 평균은 동 81.3퍼센트, 주석 13.8퍼센트이다. 이들 수치는 한국식동검(세형동검)의 분석치인 동 79.2퍼센트, 주선 13.4퍼센트와 매우 유사하다. 한국종과 동검의 동 : 주석 조성비가 유사한 것은 단단하면서도 사용(타격)할 때 잘 깨져서는 안 된다는 칼과 종의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청동무기를 제작했던 전통이 한국종 제작에도 그대로 전해져 좋은 종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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